我 – 내가 대체 뭐냐?

我 – 내가 대체 뭐냐?

 

사람들이 때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그래 오늘부터 변하는거야’
‘지금까지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야. 이제까지의 나는 버린다’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간다’
‘가면을 쓰고 살기 힘들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가 자신에게마저도 진실한 나로 살아가는 걸까?

나라는 존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상황과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가진다.
성선이든 성악이든 혹은 성무선악이든 이런 관계들 속에서 변하게 된다.
이렇게나 수많은 변화하는 자신들을 모두 부정하고
오직 한 가지 원래의 자신을 찾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인가?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 업데이트 지우기를 실행하고 원래 프로그램처럼 자신을 찾는다면,
정말로 초라한 자신만 발견하게 될 터인데 말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는 완벽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단언하고,
서구세계의 정신을 지배했던 종교의 No.2도
완전해지기 위해 광야에서 40일동안이나 단식을 하고 악마와 유혹에 이겨냈다.
거기에 동양의 성현들도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다.
무게 4kg 정도의 겨우 생존의 기본 기능 정도만 가진 채로 말이다.
이런 기본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가 된다.
그러면서 사춘기가 되면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정체성은 어디서 찾는가?
태어났을 원래 모습에서 찾을 것인가?
분명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학습과 업데이트, 업그레이드 된 상태에서부터
자신을 찾을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원래의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자신의 정체성은 어느 한군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의 말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실만을 나로 규정지을 수 도 없고,
4대성인중의 한명이 말한 치우치지 않는 것 만 나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정체성은 지금까지의 나에게서부터 찾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겪어왔던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바로 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바로 나고,
이 글을 쓰기 전의 경험을 겪은 나도 나이고,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나도 나다.

 

나는 변하겠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무엇으로 변한단 말인가?
너로 변하나?
그건 아니지 않는가. 왜 이리 쓸떼없는 결심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내가 진짜 내가 아니면 넌 도대체 누구로 살아왔던 것인가?
그대는 국정원 요원이 아니다.
왜 그대를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속였다는 말로 자신의 실패를 위로하나?
본래의 나를 찾는다 하고 가면 쓰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을 왜 하지?

 

가면 쓴 모습을 자신이 아니라 부정하고 그 모든 가면 뒤에 자신만이 진정한 자신이라면
이거야 뭐 힘들어서 사회생활 하겠냐?
속이고 사는 모습에 회의를 느끼지는 않았는가 모르겠다.

이 모든 생각들을 뿌리치고 마지막에 남는 한마디 말이 남는다.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노사부님과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이 했던 말.

 

나를 보여주는 것은, 지금의 내 행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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