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검전 — 인연편

– 2000년 –

“미안해 오빠…더이상 만나는 거 부담스러워…이 검도 돌려줄게.”

소녀가 두손으로 힘겹게 들어올린 검을 소년은 굳은 표정으로 받아들었다. 어느덧 소년의 눈이 젖어 있었다. 소년은 얼른 돌아섰다. 울음을 참기 위해 들썩거리는 어깨가 호법검사의 문장을 흔들고 있다. 잠깐의 정적이 지난 후, 소년의 등을 넘어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그리고…고마워…”

갈대가 흐드러지는 소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바닥의 눈물자국 또한 점점 짙어졌다.

얼마나 이자리에서 슬퍼하였는가? 소년이 정신을 차려보니 꼬박 4일을 흐느끼고 슬퍼하고 있었다. 소년이 일어서자 망토가 검에서 비껴졌다. 검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성주소환령. 언제부터였을까? 소년은 성을 향하여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땅이 자신에게 달려드는것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하앗! 호법검사들은 무얼 하는가? 백성들을 어서 대피시키고 수호검사들은 정면의 적을 견제하라!”

은빛의 갑옷을 입은 성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검사들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호검사 ‘중직’은 주민들을 대피시키는데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성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다른 호법 검사들을 모두 마주쳤지만 ‘진혁’만은 보이지가 않는것이 이상했다.

해가 어느새 산 뒤로 넘어가고 전투도 일단락 지어져 잠시동안의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래도 중직은 대피막사 전망대에서 주민들을 지키고 있었다. 막사들을 살피고 있는 중에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껴져 둘러보니 ‘도연’이었다.

– 혹시…혁이 보지 못했니?

도연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다 다른곳으로 자리를 피하였다. 중직은 의아해 했지만 남녀관계에 끼여드는것이 귀찮아 더이상 추궁하지 않고 계속 보초를 서기로 했다. 그러나 중직도 어둠속에서 도연을 지켜보고 있던 네개의 눈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네개의 눈은 둘씩 작을 맞추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도연은 자신의 집 앞에 서있었다. ‘중검도장’ 도연의 아버지는 세칭’무령장주’라 불리는 도검의 장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솔들도 모두 대피하여 있어 지금은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집에 들어가는데 긴장이 되었다. 조심스럽게 도장 안으로 들어섰다. 연무장에는 달빛을 받은 대리석바닥이 빛의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맞아. 혁이오빠를 처음 만난것도 오늘같은 분위기였지.’

도연은 발및을 받으면 과거의 일을 회상하였다.

“무령장주 되십니까?”

도연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가르쳐주며 숨으로고 손짓하였다. 도연은 얼른 그곳으로 뛰들어들어 숨어서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러기를 기다렸는지 순간을 잘 맞추어 그가 연무장 한가운데서 허공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찰나의 고요함을 먼저 깬 것은 장주였다.

“내가 무령장주라 불리는 ‘수연’이오. 소년은 누구시오? 그리고 어떤 용무이신지?”

소년의 시선이 그녀의 아버지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인간의 것이 아닌듯했다.

– 즐거운 상상은 여기까지. 아, 그리고 덕분에 그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

도연은 정신을 차리려 했으나 알수 없는 힘에 의해 정신을 놓고 말았다.

– 그래…잘 자야지… 네 생애의 마지막 편한 잠이 될 테니…도연아…

검은 날개를 살짝 흔들어 도연을 안은 그는 슬픔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비추는 달을 바라보았다.
“혁아~ 어디있니~ 나 ‘은혜’야~ 대답 좀 해봐~”

은혜. 성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난 두 미녀중에 한명. 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지략, 천문, 무예에 이르기까지 어니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진정한 팔방미인이다. 지금은 성의 군사의 자리에서 성주를 보좌하고 있다. 은혜와 진혁은 성에서 같이 무예를 배운 동문. 그녀는 그가 얼마나 도연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와 헤어졌으니 그 유약한 성격에 어딘가에서 울도 지쳐 쓰러진 것이 틀림없다. 얼른 찾아야 하는데…아 저건 뭐지?

– 대장, 여기 인간여자가 있는데요?

은혜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신을 둘러싼 네 마리 ‘마족’의 존재를. 그녀가 팔을 털자 ‘육척홍창’이 모습을 드러냈고 주면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 호오, 이거 처녀가 아닌가! 얘들아. 얼른 눕혀라. 오랫만에 재미좀 보자.

은혜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왜 마족이 이런데에 있는거지? 아무리 하급 마족이라도 하나를 상대하기에 벅찬데 넷이나 되다니!

은혜가 상대한 마족의 정체는 고급마족 ‘흑천사’였다. 그녀는 결국 그들에게 생포되었고, 대장앞에 끌려나왔다. 대장은 그녀의 혈을 짚고 잠시 기다리며 엷은 미소를 보였다.

‘아, 이 사람은!’

미소의 주인공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다시 만나니 어때?

은혜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이렇게 다시 만날줄은 몰랐어. 나…그때 너에게 거절당했던 것. 지금 하고싶어.해도 되지?

‘후후…대답할 수 없는 내게 묻다니. 그리고 이상황에 저런 생각을 하다니….바보…”

그는 그네에게 다다가 천천히 옷을 벗기었다. 달빛에 비치는 그녀의 몸이 애처럽고 버티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날개로 그녀를 감싸 주었고 자신을 그녀안에 묻었다. 어느새 그녀의 혈이 풀렸는지 자연스럽게 그를 간싸 안았다.

열렬한 사랑의 후에, 그는 그녀를 추스려주고 나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어. 아직 우리는 사랑하잖아. 내가 마족이었다고 날 멀리한 것이 아니라는것 또한 알고 있었어. 내가 용서된다면, 그리고 내 피가 용서된다면…그때 다시 찾아올게.

그는 입맞추었지만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 다시 만날수 있기를.

그는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널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날 버리고 떠나는 너란 말이야!”
얼마나 울었을까? 벌써 달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괜찮아요, 누나?”

낯익은 목소리…진혁이었다. 눈물을 훔치고 그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도 상당히 초췌해보였다.

“나 좀 부축해 주겠니?”

도움을 주기 위해 찾던 소년에게 오히려 도움을 청하다니…은혜는 피식 웃고 말았다. 진혁은 보았는지 못보았는지, 아무 말 없이 은혜를 부축해서 성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둘은 내려오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 그 말이예요…”

“미안해. 지금은 아무말도 듣고 싶지 않아. 어서 성으로 돌아가자.”

진혁은 그 말속의 수많은 의미를 알고 있지만, 그 보다는 태초부터 지켜온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판단했다.

“누나. 누나는 율법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있죠?”

은혜도 알고 있었다. 마족과의 관계는 ‘죽음’이라는 사실을.

“누나…지금 내가 묵인하고 넘어가도 결국은 들켜버릴 겁니다. 그냥 여기서 자결하시는것이 좋지 않을까요? 현이형과의 관계는 성 안 모든이가 알고있으니…”

– 죽지마라.

진혁은 보았다. 검은 날개의 마족, ‘현’을.

– 혁아. 너도 은혜에게 죽으란 말을 할 처지는 아닐텐데. 내가 모족으로 각성하고나서 너를 처음 대하는 이 순간, 네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야! 난 인간이다. 아비저도! 그리고 어머니도! 인간이 아니였다면 하급 마족병사의 손가락 놀림만으로 돌아가셨겠는가!!”

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 가슴속에 품고 있는넋도 여기까지야. 아무튼 그녀에게 손을 댄다면, 그리고 그녀가 자결하더라도 네녀석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현은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혁도 은혜도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몇일동안 전투는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 사이 진혁과 은혜도 복귀하였다. 둘은 문책을 받았으나, 징계는 전후로 미루기로 하였다. 아무런 진전도 없이 열흘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열흘째 밤, 진혁은 도시순찰을 하던 중 중검도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여기에 와서 처음 온 곳이지…’

문득, 도장 안에서 희미한 피냄새가 흘러나왔다. 혁이 연무장으로 뛰어들어가자 그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을 믿을수가 없었다. 검들이 부러져 있었다. 그 부러진 검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 흐음…용족이긴 한데…혈통이 불분명하군…아, 그대는이 검과 비슷한 기운을 뿜는군.

그남자의 손엔 대고조부님의 검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용족이라고?

“난…인간이다.”

– 으하하하하하~

그남자가 크게 웃었다. 웃으모리에 마성이 깃들어있는지 몸이 조여왔다.

– 자신의 존재가치조차 모르는군.

“존재가치?”

– 너도 검사라면 내 이름정도는 들어봤을것이다. 내 이름은 ‘검사지룡 백섭’ 이라 한다.

(검사지룡 백섭 – 3계의 마검들을 찾아다니며 파괴하는 용족. 한때는 3계에서 인정받는 검사였으나 지금은 검 사냥꾼으로 전락하였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 본래 부려뜨려야 하지만 몇백년만에 만난 동족의 물건이니 돌려주도록 하지.

혁이 검을 받아들자, 검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 오직 하나만이 남는다…

“저기…”

진혁이 그를 찾았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다.

‘오직 하나만이 남는다’ 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되뇌이고 있었다.
소강상태가 몇일동안 계속되었다. 그 시간동안 검사단은 전열을 가다듬고, 제장들은 회의를 위해 성루에 올랐다. 제장들을 숭루에서 마군의 진세를 살펴보는데 적의 진문이 열리면 한 장수가 단신으로 출진하여 차응로 성루를 가리키며 외쳤다.

“명성이 높은 진혁과 한판 겨루기 위해 여기까지 왔수다. 혁! 게 있느냐! 어서 목을 씻고 나와 나를 반기라! 와하하하하~”

진혁이 성루에서 뛰내리자 한 필의 말이 그를 받았고 적의 장수앞에까지 가서 정지했다.

“내가 호법검사 진혁, 그대의 이름은?”

마장수는 피식 웃으며

“어린놈이 말이 많구나!!”

적의 장수는 진혁과의 단 일합으로 목이 달아났다. 진혁의 왼손에는 ‘진혼’ 이라는 이름의 13척의 장창이 들려있었다.

그 후에 마군의 진영을 창으로 가리키자 이번엔 장수 둘이 달려나왔다.

“그래 좋다. 오랫만에 ‘진혼’이 이름값을 하는구나!”

진혁이 말머리를 그쪽으로 돌리자 그들은 서로 앞뒤로 간격을 두고 혁을 덮쳤다.

“시간차 공격? 좋아, 그렇다면 나도!”

진혁은 ‘진혼’을 거꾸로 잡고 오른손은 검 잡이에 손을 대며 그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어느 선봉의 장수가 코앞에 닥쳐았다.

“죽어랏!”

그가 창을 휘둘렀지만 진혁은 가볍게 피하며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속력을 줄이고 두번째 장수를 기다렸다. 두번째 장수는 창을 비껴들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선봉의 장수도 말머리를 돌리고 진혁을 노렸다.

“그래. 내가 이걸 노린거야!!”

진혁은 두번째 장수의 창을 피함과 동시에 왼손을 뻗어 ‘진혼’으로 선봉의 목에 구멍을 내고, 그 원심력을 이용해 검으로 두번째장수의 목을 날렸다. 장수들의 목에서 품어져 나오는 푸른 선혈 사이로 무지개가 희미하게 보였다. 진혁에게 감상할 시간도 주지 않은채 또다른 장수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현’이었다.

“현이 형.”

– 네가 인간 이상의 능력으로 우리들을 상대해 왔으니, 순종 마족이 상대해 주어야겠지?

두 장수가 이십 합 정도 겨루었을때, 진혁은 마군진영앞 큰 기둥에 도연이 묶여있는것을 발견했다. 진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이런 비겁한!”

진혁은 현을 창으로 밀어제끼고 활을 꺼내 도연을 묶고있는 밧줄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 이놈이 나를 무시해!!

현은 검을 화살을 향해 던졌다. 현의 검은 진혁의 화살을 막았으나, 진로가 틀어져 계속 날아가 도연의 심장을 꿰뚫었다.

“꺄아아악~”

꽂혀진 검의 틈새로 붉은 선혈이 뿜어져나와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연아!”

– 어딜!

도연에게 가려하는 진혁을 현은 더욱 날카롭게 공격하였다.
그들의 전투를 성루에서 성주와 제장들은 긴장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성주, 혁이는 괜찮을까요?”

은혜가 성주에게 물어싸. 성주는 주거을 쥐고 감정을 억제하며 말을 이었다.

” 저 ‘진혼’ 이라는 창의 힘은 긴 공격범위도, 검의 날카로움도 아니네. 이름 그대로 저 창의 진짜 히은 주인의 감정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정시키는 것이네. 진혁이 ‘진혼’을 놓치지 않는 동안은 이성을 찾을수 있을 것이야.”

은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몰고 그들의 전투장소로 나갔다. 그녀가 달려오는 것은 보고 마군에서도 한명이 나와 그녀와 맞붙었다.

‘혁이에게 창의 힘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녀와 맞붙은 무장도 엘리트급 실력의 소유자였다. 오히려 은혜보다 몇수 위의 실력인 것 같았다. 서서히 은혜는 자신이 말리는 것을 느꼈다. 진혁은 현을 유인하며 조금씩 은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30여합이 지나자 순간 은혜가 창을 놓쳤고, 적장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창을 던졌다. 진혁은 직감적으로 왼손으로 진혼을 휘둘러 창을 튕겨내며 검을 뽑아 현의 공격을 방어했다.

– 네가 날 우숩게 보는 것이냐!!

현은 진혁이 거두는 진혼을 자신의 창으로 내리쳤고 ‘진혼’은 부러지고 현도 손에서 검을 놓치고 말았다. 검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은혜의 목을 꿰뚫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세 장수가 넋이 나갔으나, 가정먼저 정신을 차린건 현이었다.

– 이놈! 감히 은혜를!!

현은 혼신의 힘을 다해 진혁을 내리쳤으나, 진혁은 부런진 창을 버리고 비어있는 왼손으로 창을 잡았다. 창으로부터 느껴지는 진혁의 기질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폭발할 듯 하지만 차번하며 섬뜩한…마치 용과 같은 기질이 진혁에게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오직…하나만이 남는다…”

진혁의 눈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였다. 마군장수는 기세에 눌려 기수를 돌려 자신의 진영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진혁이 손바닥을 펴자 부러진 진혼의 손잡이 부분이 저절로 날아가 무장의 심장을 꿰뚫었다. 진혁이 쓴웃음과 함께 주먹을 쥐자 무장은 폭사되었다. 그 광경을 본 성주는 중직에게

“지금 바로 모듬 백성들을 북문 밖으로 피신하게 하라. 어서!”

중직은 서둘러서 주민들과 병사들을 북문 밖으로 대피시키기 위해 먼저 북문으로 달려 나갔다.

‘북문은 좁아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갈수가 없다. 그렇다면!’

중직은 자신의 검을 고쳐 쥐었다. 서서히 빛나는 검에선 ‘백아’라는 두 문자가 점점 선명해졌다. 중직, 눈을 부릅뜨고 양손으로 검을 움켜쥐며,

“백귀아호검! 대파!”

회색빛의 섬광이 북쪽성벽 전체를 무너뜨렸다. 중직이 숨을 몰아쉬면 뒤를 돌아보자 주민들이 이곳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진혁의 정신은 이미 이성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현은 공간이동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이동하던중 진혁에게 붙잡혀 왼팔을 잃었다.

– 너! 넌 인간이 아니야!

진혁은 잠시 주춤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난…인간이야…”

이 틈을 타 현은 다시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진혁은 두 주먹을 쥐었다 하늘을 향해 펴고, 저쪽 하늘에서부터 빛이 내려와 모든것을 덮어 버렸다.
똑, 똑…

진혁은 입술에 촉촉함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렸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누꺼풀도 손가락조차도 움직일 힘이 그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쉬고 싶을 뿐이었다.

북문…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은 죽은사람의 침묵, 다친사람의 고통에 찬 신음, 살아남은 사람의 절규와 미친듯한 웃음으로 인해 생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중직도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손에서 검이 사라진 뒤였다.

– 백아.

그가 마음속에 검의 이름을 부르자 주인의 종은 폐허를 떨치고 나와 그의 손에 들어왔다.

– 백아, 사람들을 진정시켜다오.

그가 다시한번 검에게 부탁하자, 검은 은은한 공명을 시작했다. 은은한 공명음은 남은자들의 가슴속을 관통하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어느정동 진정이 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에 기댄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모든것을 파괴한 장본인이 ‘그’라니…중직은 배신감과 분노가 그의 정신과 신체를 사로잡았다. 그는 해명을 듣고 싶었다. 그의 분노가 그에게 힘을 주었다. 그는 걸음을 남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이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진혁의 손에 붙들려 있는 검의 감촉이 느끼면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한 일을 믿을수 없었다. 아니, 믿고싶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폐허 뿐이었다. 도연을 묶었던 기둥도, 보금자리였던 성채도, 푸르던 초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내가! 내가! 내가!

진혁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정신이 혼미해졌다. 한줄기 삭풍은 그의 몸을 할퀴고 지나가 그의 죄책감을 더욱 부추겼다.

“너. 마룡족이었군. 설마 했는데 말이지.”

진혁이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의 앞에 백섭이 나타났다.

“제가! 제가! 제가!”

절규하는 진혁을 백섭은 살포시 안아주었다. 그는 차분한 말투로 그의 마음에 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 마룡족은 용족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종족이지만, 그 힘이 나타나는 때는 오직 지금 네가 들고있는 ‘마룡신검’이 선택한 자 뿐이다. 이 검은 네 대고조부 다음으로 널 선택했지만 이 힘을 각성하기엔 넌 너무 어렸어.

백섭이 그를 놓아주자 진혁은 모든것을 포기한 듯 가만히 무릎을 꿇었다. 백섭은 진혁의 검을 받아들고 그에게 말했다.

“먼 훗날, 이검이 선택한 너의 동족에게 검을 전해줄 것을 약속한다.”

진혁은 조용히 그개를 끄덕였다.

중직은 남문의 잔해를 지나치면서 진혁을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땅으로 떨어지는 진혁의 목을 보았다. 중직은 친구였던 자의 기운을 느꼈다. 진혁과 같진 않지만 비슷한 기운. 그도 용족이었다. 중직은 남은 기운을 짜내어 전력으로 진혁에게 날아갔다. 바닥에 구르는 진혁의 목을 중직은 한손으로 들고 얼굴을 쏘아보며 절규했다.

“죽지마! 왜 이 모든것을 파괴했는지 해명하란 말이다!”

그러나 혁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해명을 듣지못한 중직은 화가나서 진혁의 머리를 공중으로 던진 후에 검기로 잘게 부수어 버렸다. 그리고 그의 남은 몸도 부수어 버렸다. 그리고 검을 저 멀리 유유히 걸어가는 용족에게 겨누고 그는 외쳤다.

“이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마라. 용족! 우리는 너희 마족과 용족의 잔인한 행위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난! 그리고 나의 후손은 너희 두 종족을 절멸시킬 것이다. 그 언제가 되었든, 그 어느 장소에서든! 기억하라! 우린 너희를 모두 죽여버릴 것이야!!”

그의 절규는 하늘을 찌르고 땅을 울리듯 처절하게 메아리 쳤다.

 


Share.

About Author

이제는 잊혀진 어느 철학과의 후예, 그리고 예비역 육군 상사. 어려서부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는 천주교 사제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치듯 마주한 철학과에서 길을 찾게 된다. 학자금대출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대학원을 포기하고 다양한 일을 하며 사회에서의 첫 번째 십 년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예비 미중년.  철학의 어느 한 분야를 집중 공부하기 보다는 사람의 삶에 있어서의 철학함에 더 관심이 더 쏠림. 최근의 관심사는 '철학가는 정치가가 될 수 없는가.' 더 많은 사람과 철학함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동원해 JNA 사이트를 개설.

Leave A Reply